
The Freiburg Baroque Orchestra - Picture © Peter Witt
연주일시 : 2008년 3월 26일 8시
연주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연주곡목 : 잡다하게
좋은 기억을 안겨준 연주회를 돌이켜보면 다음 두 가지로 범주화 시킬 수 있는 것 같다.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 연주회, 낯선 작품을 쉽게 이해시키고 몰입하도록 만든 연주회.
바흐, 핸델, 비발디 바로크 삼총사가 아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드레스덴 작품들이 중심이 된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는 굳이 이야기하자면 생소한 작품에 초점을 맞췄다. 요한 다비트 하이니헨의 대 협주곡과 함께 직간접적으로 드레스덴 오케스트라와 관련이 있었던 텔레만의 모음곡과 협주곡, 빌헬름 프리데만 바흐의 신포니아 등이 선곡되었다. 유일하게 대중적인 작품이라면 바흐의 유명한 두 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일 것이다. 여기에 핸델의 오페라 아리아들이 고명처럼 얹혀졌다.
연주회장은 음악사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지만 연주력이 뛰어나다면 익숙한 레퍼토리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고음악이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에 내한한 레자르 플로리상이 연주하는 샤르팡티에와 퍼셀에 청중들이 숨죽일 만큼 감동받은 사실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라인하르트 괴벨과 무지카 안티콰 쾰른 이후 완벽한 기술, 격렬한 속도와 다이나믹, 예각적인 아티큘레이션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지적인 해석으로 대표되는 소위 독일적 바로크 해석의 큰 흐름은 이제 베를린의 아카데미 퓌어 알테 무지크 그리고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가 계승하고 있다. 매너리즘화 되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은 전통을 자랑하는 영국 바로크 앙상블에 대해서는 과감성 측면에서, 신진 이탈리아 앙상블에 대해서는 구조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 상대적인 우위에 있는 여전히 유효한 방법론이다.
연주회의 시작은 다소 불안했다. 풍부한 경험에도 불구하고 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는 그날따라 미스가 많은 자신의 바이올린 연주가 신경 쓰였는지 오케스트라를 장악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똑같은 장소에서 베를리너 바로크 졸리스텐을 여유 있게 리드한 폰 데어 골츠의 스승, 라이너 쿠스마울이 떠올랐다. 당시 베를리너 바로크 졸리스텐은 평균적으로 더 나이든 연주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성부의 자발성도 뛰어났고 훨씬 생기 있는 앙상블을 들려주었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의 구원자는 아이러니하게도 맨 뒷줄의 내추럴 호른 주자들이었는데 그 원초적인 우렁찬 음향과 완벽한 음정은 텔레만의 모음곡과 마지막 하이니헨의 협주곡에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바소 콘티누오는 유감스럽게도 리듬감이 부족했다. 테오르보는 거의 있으나 마나한 존재로 전락했다. 홀이 너무 컸다고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서도 더 좋은 바소 콘티누오 연주를 들은 기억이 있다. 바소 콘티누오의 리듬감은 특히 바흐가 대위법에 집착한 것만큼이나 리듬을 사랑한 텔레만을 제대로 연주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연주관습적인 측면에서 바흐의 유명한 느린 악장을 별다른 장식 없이 연주한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연주회장에 가는 이유는 음반과 다른 실연만의 묘미가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이고 완결된 연주를 담아내야 하는 음반과 달리 청중 앞에서는 모험이 필요하다. 혹시 실수가 있더라도 실연의 열기가 이를 보완해줄 것이다. 드레스덴 궁정악장 피젠델은 느린 악장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것으로 명성을 얻었지만 바로 그 때 피젠델의 그림자를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한편 핸델 아리아 연주에서 비올라를 제외한 것도 지적하고 넘어갈 부분이다. 비올라 파트가 따로 없더라도 베이스 라인을 옥타브 위로 중복하는 것은 상식적인 연주관습이다. 골츠가 이를 몰랐을 리가 없고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연주가 끝난 다음에 여기에 대해 지적한 연주 평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랍다.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는 최근 녹음한 음반에서도 기술적으로는 뛰어난데 점차 틀에 박히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연주회장에 앉아있으면서 오래 전 피젠델 협주곡 음반을 듣고 받은 충격과 신선함에 대한 갈증이 끓어올랐다. 한때 독일적 매너리즘을 타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었던 악단이 이제는 남은 반찬을 다시 데워서 내 놓고 있다. 그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언젠가 연주회장에서 다시 만나 모험심과 창의가 발휘된 진실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길 바란다.
Posted by AntiquEvangel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