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귀스타브 레온하르트(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오르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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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귀스타브 레온하르트의 연주를 접한 것이 프란스 브뤼허, 안너르 베일스마와 함께한 텔레푼켄 레이블의 전설적인 명반, 이탈리아 리코더 음악 선집이었다. 칼 리히터와 헬무트 발햐의 시대에 레온하르트 그 동료들은 말 그대로 신세계를 열어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고 그 동안 고음악과 시대악기 연주는 어느 정도 뿌리를 내릴 수 있었다. 이제 팔순을 맞이한 한 음악가, “살아있는 전설”(골트베르크), “고음악 구루”(뉴욕타임즈)같은 상투적인 표현은 레온하르트라는 인물을 묘사하는데 충분하지 않다. 귀스타브 레온하르트는 20세기 음악가 가운데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정력적이고 전인적인 인물이며 누구도 비견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사람이다. 그의 음악은 20세기에도 21세기에도 여전히 생생하다. 1950년대 바흐 길드의 녹음이든 그로부터 무려 반세기나 지나 녹음한 알파 레이블의 최신 녹음이든 레온하르트의 연주를 들을 때 마다 머리를 망치로 두들기는 것 같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바로 그런 인물의 80세 기념 세트라니 당연히 기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최근 음반사들의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으로 소니 레이블에는 귀중한 음원들이 잔뜩 모여있는 것이다. 레온하르트의 경력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이치 하르모니아 문디, 볼프 에릭손의 선구적인 독립 레이블 세온, 그리고 필립스를 거쳐 레온하르트가 마지막 안식처로 삼으려고 했던 소니-비바르테까지.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격언은 진리인 것 같다. “살아있는 전설”의 80세 기념 에디션이라고 하기엔 패키지나 부클릿의 완성도가 민망할 정도이다. 음반 선택 자체는 나쁘지 않다. 콜레기움 아우레움과 함께한 역사적인 바흐 협주곡 연주, 프랑스 바로크 음악에 대해 대부분 무지했던 시대에 마래나 포르크레 음악의 아름다움을 전해준 베르사이유 궁의 음악 등 중요한 초기 음반들은 물론 잘 알려지지 않은 소니-비바르테 레이블에서 클라비코드로 연주한 뵘 녹음처럼 옛 건반악기 팬들이 환호할만한 음반들이 포함되어 있다. 또 한가지 특기할 만한 점은 알크마르의 슈니트거 오르간으로 연주한 바흐 음반처럼 오르간 연주를 다수 포함했다는 점이다. 레온하르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그가 에두아르트 뮐러를 뒤이은 훌륭한 바로크 오르가니스트라는 점을 종종 잊어버리는 것 같다. 반면 이번 에디션에 제외된 중요한 녹음도 많다. 이를테면 오리지널 크리스티안 첼 하프시코드로 연주한 바흐 선집이나 레온하르트의 흔치않은 모차르트 포르테피아노 연주 같은 것은 왜 제외되었는지 의아할 정도이다. 내지는 2007년 인터뷰를 수록한 것을 제외하면 읽을 거리가 없다. 선택된 열 다섯장의 음반에 대한 사용악기나 녹음 데이터 같은 기초적인 내용도 누락되어 있다. 역사적이고 음악적인 가치를 담고 있는 하나 하나의 음반이 트랙 리스트를 제외하곤 아무 설명도 없이 종이 케이스에 덜렁 담겨있다. 이래서는 시중에 범람하는 싸구려 전집류와 다를 바가 없다. 소니가 몇 번이나 발매한 멋진 글렌 굴드 에디션 같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까? “살아있는 전설”이 “전설”이 되어야만 가능한 일일까?
Posted by AntiquEvangel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