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뾰족한 활, 엔드 핀 없는 첼로, 목제 플루트, 밸브 없는 트럼펫으로 무장한 시대악기 “십자군”들이 이미 콘서트홀과 음반 시장을 휩쓸어 버린 지 오래 되었다. 이전에는 작품이 만들어진 환경이나 의도를 고려한 복원이라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20세기는 참으로 특별한 시대이다. 처음에는 음악학적 호기심으로, 특정 시대에 어울리는 적절한 사운드가 있다는 소박한 믿음으로, 또 현대 오케스트라의 획일화에 반대하며 옛 음악과 현대 사이의 단절된 전통을 복원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시대악기 연주는 시작했다.
한 세기 전에 이미 시대악기를 시도하고자 하는 미미하지만 열정적인 움직임이 있었다. 19세기 중반, 프랑수와 조셉 페티의 “역사적 연주회”는 고고학적인 관심 이상이 되지 못했지만 해협 건너 아놀드 돌메치는 옛 악기와 연주법의 복원이라는 실질적인 문제에 도전하여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결실을 맺었다. 또한 베를린의 요아힘과 모저는 시대별로 상이한 양식의 연주 문제를 공론화 했으며 모저와 돌메치의 영향을 받아 20세기 전반에 음악해석과 연주에 관한 중요한 문헌들이 출판되었다. 슈바이처는 바흐에 관한 저술에서 바로크 오르간의 복원과 함께 시대악기의 사용을 조심스럽게 언급했으며, 파울 자허와 아우구스트 벤칭어는 바젤에 고음악 연구자들을 위한 놀이터의 기초를 닦았다.
그러나 이런 활동도 최초에는 결코 학문적 목적 이상의 것이 아니었다. 가장 뛰어난 학자들조차 시대악기가 일반적으로 확산되리라 결코 생각하지 못했다. 서스턴 다트는 옛 금관악기의 부활은 불가능한 것으로 보았다. 초기 바흐 레코딩에서 “Originalinstrumente”란 표현은 오늘날과 같이 완전한 시대악기와 연주법의 적용을 의미하지 않았고 단지 바흐가 지시한 악기들, 즉 리코더와 비올라 다 감바와 하프시코드를 사용하기만 하면 역사적인 것으로 인정받았다. 바흐 연주에서 최초로 광범위하게 역사적인 연주방식을 적용했던 바젤 스콜라 칸토룸 합주단조차 그 사실을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시대악기의 사용은 단지 실험적인 시도였지, 정당성의 기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에 이르러 “mit Originalinstrumenten”은 자신들을 획일화 된 오케스트라와 구별하는 모토가 된다. 아르농쿠르와 그 동료들은 활발한 연주 활동을 함과 동시에 악기 전시회와 공개강좌를 통해 고악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 공헌했고 또 온갖 논쟁에 불을 당겼다.
네빌 매리너처럼 “바흐에게 피아노가 주어졌더라면 피아노를 쳤을 것”이라는 식의 주장은 순진한 편에 속한다. 음악적·미학적으로 진지한 반대론 몇 가지는 숙고할 필요가 있다. 현대인들의 옛 조율법과 음고, 악기음색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는 것 같다. 시대악기 주자의 연주기술이 대체로 떨어진다는 한스 켈러의 의견 역시 최근 뛰어난 비르투오조들이 등장하면서 설득력을 잃었다. 현대인의 감정도, 사상도 완전히 바뀌고 연주환경도 전혀 달라졌는데 단순히 연주 기술만 복원하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라는 한스 포크트의 주장처럼 옛 음악의 재현은 문화사의 총체적인 측면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고 다행히 최근의 연주자들은 이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음악은 연주자에게 완전히 다른 사상과 시각을 요구한다. 연주 정보는 항상 부족하고 음악 자체는 압축되고 암시된 상징으로 구성된다. 고음악 연주는 자주 고고학, 문서학, 도상학, 악기제작법과 같은 인접 학문의 도움을 필요로 하며 작품과 악기에 대한 엄청난 연구를 필요로 한다. 고음악의 대가 들이 전례 없을 정도로 전인적 인간이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옛 음악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살아 숨 쉬는 것으로 만드는 과정은 차근차근 옛 사람의 언어를 배우고 실험하고 소통하는 것으로 궁극적으로 감상자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조르디 사발은 좋은 연주란 “오랜 연주생활과 탐구에서 얻어진 음악적인 영감”에서 비롯된다고 말하고 이런 과정은 반드시 “책상 위에서” 철저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야 완전해진다고 말하고 있다.
최근에는 종래 널리 사용되던 정격성(Authenticity)이라는 단어는 잘 쓰이지 않는데 지기스발트 쿠이켄의 말처럼 정격성이란 단어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기한 것은 정격성에 내포된 독단성이지, 역사적인 접근법 자체는 아니다. 역사적인 연주방식은 본질적으로 독단성이 끼어들 틈이 없다. 옛 문헌들은 연주 스타일과 악기 구성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필립 보쌍이 “시대악기 연주는 획일적인 적용을 거부하는데 진면목이 있다”라고 선언한 것은 감바 주자 힐레 페를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항상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그 규칙을 지키고 언제 깨뜨릴 것인가를 확실히 알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말한 것과 연결된다. 오늘날의 바로크 음악연주는 마치 17, 18세기에 그랬던 것처럼 개성이 강한 연주자와 다양한 국가 양식의 전성기처럼 보인다.
오늘날 역사적 연주방식의 두 가지 큰 경향은 절충주의와 거기에 대비되는 엄정한 역사주의이다. 오케스트라에 부분적으로 시대악기를 채용하거나,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현대적으로 세팅된 악기를 역사적 연주방식으로 연주하는 절충주의는 실제로 상당한 호응을 얻고 있고 그 전위에는 헬무트 뮐러-브륄과 라이너 쿠스마울이 있다.
절충주의의 반대편에는 엄청나게 세밀한 부분까지 고민하는 일단의 연주가들이 있다. 지크베르트 람페는 온갖 음고와 조율법을 실험해본다. 장 튀베리, 윌리엄 크리스티 같은 일단의 프랑스 음악 전문가들은 최신 연주에서 바로크시대 프랑스 라틴어 발음을 복원했다. 역사적인 근거에 바탕을 둔 연주는 종종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를 창출하는 경우가 있고, 연주 기술과 음향 측면에서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되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한다면 역사적인 엄정함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분명히 노력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고음악 운동은 발전과 변화라기보다는 끊임없는 연구의 과정이었고 연구를 거듭할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기 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고음악 운동이란 궁극적으로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기 보다는 수없이 많은 분기를 탐험하는 과정 그 자체이다. 오늘날 시대악기의 연주가 기술적으로 완숙해지고 보편화 됨에도 불구하고 “현대 연주자들의 연주관습이 필연적으로 작곡가와 동시대 연주자들의 관습을 따라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문제는 여전히 난해하다. 연주자들이 설득력 있는 나름의 답을 찾아내기 위해 확신을 갖고 있는 한 그 탐험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AntiquEvangelist

2009/11/30 10:42 2009/11/3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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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ntiquEvangelist 2009/11/30 10:51 # M/D Reply Permalink

    복습용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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